손종수

 

 
들어가며

오늘도 인터넷을 여행하고 계실 여러분, 당신께 필자는 큐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여행 안내서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물론 필자가 말한 ‘새로운’은 최근에 들어 조명되고 있다는 뜻이지, 갑자기 뚝딱하고 나온 것이 아님을 미리 전한다. 이미 인류가 창조적 활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큐레이터라는 자들이 있어 예술, 역사의 세계를 정리하였으며, 현대의 정보과잉 시대에 진입한 이후 많은 인터넷 연구자들이 무인 인터넷 탐사선을 만들고자 노력해 왔기에 큐레이션이라는 인터넷 여행안내서가 탄생할 수 있었다. 부디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 후 적극적으로 큐레이트된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또한 스스로 큐레이터가 되어 자기 자신과 주변을 밝히는 분이되기를 바란다.

 

큐레이션이라는 안내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지금쯤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무언가 궁금하거나 정보가 필요할 때 인터넷 세계를 여행한다. 검색어를 써넣은 후 검색 버튼을 누르면 다양한 정보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인터넷의 불행은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는 정말 좋은 정보를 정보의 바다 깊이 묻어버렸다. 물론 구글, 네이버, 야후 같은 검색엔진이 우리가 감수해야할 수고를 어느 정도 덜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좋은 정보는 정보의 바다 어딘가에 숨어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좋은 최신 논문 하나를 찾기 위해 네 시간, 다섯 시간 넘게 정보의 바다를 헤매곤 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아낸 정보가 과연 정말 좋은 정보일까? 그보다 더 좋은 정보가 있지 않을까? 글쎄, 진리는 정보의 신만이 알고 있다. 다만, 우리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진리에 한 발짝씩 더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분들이 찾고자하는 지식과 경험을 누군가는 이미 찾아서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았을지도 모른다. 큐레이션은 어떤 분야에 대해 누군가 먼저 정보를 찾아보고 정리하여 목록화한 자료를 말하며 이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인터넷 여행 안내서이다. 이른바 큐레이션을 활용하면 불필요한 검색으로 인한 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서울 가는 길에 샛길로 새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유튜브에는 엄청난 수의 동영상이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미있는 동영상’으로 검색해야할까? 미안하지만 ‘재미있는 동영상’으로 검색해봐야 큰 성과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블로그에 유튜브에서 자신이 보고 정말 재미있었던 동영상을 엄선하여 골라놓았다고 하자. 적어도 그 블로그의 주인장만큼의 웃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동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블로그 주인장의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그 블로그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큐레이트”한 블로그가 된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인터넷 큐레이션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자.

 

큐레이션에도 파(派)가 있다
무협의 세계에는 무당파, 화산파, 숭산파 등 다양한 파가 존재한다. 큐레이션에도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몇 개의 종파가 존재하는데, 필자는 큐레이션의 중추적 역할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세 개 파로 분류해보았다.

 

전문가 큐레이션
전문가 큐레이션은 그 영역이 전통적인 미술관, 박물관 큐레이션과 다를 뿐이지 큐레이트 하는 방식이 거의 같다. 전문가 큐레이션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웹 사이트나 블로그, 논문 등의 자료를 섭렵하고 그 중에 좋은 것을 골라 일반 사용자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방식은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정보를 섭렵하고 정돈해주므로 잘 요약되고 분류된 고품질의 큐레이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소수의 전문가에게 큐레이션을 의존하기 때문에 질에 비해 양이 충분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믿었던 큐레이터가 정치나 특정 기업과 연줄이 닿았을 때 큐레이션이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를 방문자 수에서 이긴 허핑턴포스트 [ http://huffingtonpost.com ]
허핑턴포스트는 여러 블로그에 올라온 글 중에서 엄선된 것만을 골라 그 글의 몇 줄을 웹 사이트에 인용하고 링크를 거는 방식으로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점차 허핑턴포스트의 방문자 수가 많아지면서 허핑턴포스트의 큐레이터들은 점차 더 전문적인 사람들의 블로그 포스트를 엄선하게 되었고 결국 2011년 후반기에 뉴욕타임즈보다 많은 방문자 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가 추천하는 디자인 명품들 [ http://www.fab.com ]
fab.com은 디자인적 요소가 많은 제품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전문가들이 평가를 하고 추천한 제품들을 마치 백화점에서 보는 것처럼 보여주는 큐레이션 사이트이다. 여러분들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선정된 좋은 디자인의 제품들을 ‘눈팅’하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IT 관련 기술 및 동향을 제공해주는 IT Find [ http://www.itfind.or.kr ]

위 두 사이트와는 다소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국내 웹에서도 잘 큐레이트된 정보를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중에 하나로, IT Find는 국가 기관이나 각 연구소에서 작성한 IT 관련 기술의 동향, 분석 보고서 등을 총 망라하여 제공해주는 웹 사이트이다. 특히 IT Find에 올라오는 자료들 중에서 ‘동향 보고서’라는 이름의 자료들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최근에 이슈가되는 논문이나 기술을 정리하여 빠르게 최신 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집단지성 큐레이션


집단지성 큐레이션은 다수의 사용자들이 콘텐츠나 정보에 대한 평가를 하고 이 하나하나의 평가들을 모아서 다른 사용자들에게 추천하는 방식의 큐레이션이다. 최근에 거론되고 있는 인터넷 큐레이션 서비스들은 대부분 집단지성 큐레이션이라고 봐도 될 만큼 대세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이런 스타일의 큐레이션은 전문가 큐레이션에 비해 다소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대중성은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집단지성 큐레이션은 참여자가 많을수록 더 믿을만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집단지성 큐레이션은 때때로 너무 흥미위주이며 전문가적 식견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소셜 북마킹 서비스 딜리셔스 [ http://Del.icio.us ]
딜리셔스는 이제 너무 유명해서 다소 고루하게까지 느껴진다. 우리가 괜찮은 웹 사이트를 ‘즐겨찾기’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만난 웹 사이트를 딜리셔스에 즐겨찾기 할 수 있다. 만약 딜리셔스의 사용자가 나 하나라면 아무런 새로운 점이 없겠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이 사용한다면 웹 사이트의 큐레이션이 된다. 즉, 몇 사람이 봤고 몇 사람이 즐겨찾기 했냐에 따라 우리는 좋은 웹 사이트나 콘텐츠를 쉽게 골라낼 수 있다.

 

흥미로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메모리스트 [ http://memoryst.com/ ]
메모리스트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흥미롭거나 유용한 웹 페이지를 스크랩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이다. 패션, 자동차, 자전거,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카테고리 별로 큐레이트된 자료를 볼 수 있다.

 

사건, 이야기별로 SNS 메시지를 재구성한다 [ http://storify.com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쓰다보면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주제에 대해서 메시지가 올라올 때 누군가 그 메시지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스토리파이는 사용자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올린 글들을 사건이나 이벤트별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누군가가 어느 주제에 대해 스토리를 만들면 사용자들은 그 주제에 대한 메시지들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보가 큐레이트된다.

 

인공지능 큐레이션
인공지능 큐레이션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컴퓨터가 스스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선별하여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큐레이션이다. 필자가 인공지능 큐레이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실제로 인공지능이 구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컴퓨터가 사람의 의도를 알아서 판단하는 인공지능을 공통적으로 지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큐레이션은 컴퓨터가 알아서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귀찮은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컴퓨터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사람의 감성이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기에 때때로 부정확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 불평은 말도록 하자.

 

정리정돈이 필요한 SNS 메시지들을 큐레이트 해주는 Paper.li [ http://paper.li ]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쓰다보면 시골 장터마냥 시끄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관심사도 다양하고 친구냐, 친척이냐, 동료냐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특히 트위터의 경우 타임라인의 업데이트가 너무 빨라서 뭘 해야할지도 결정하지 못한채 나가버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Paper.li는 이런 SNS 메시지들을 분야별로 정리해서 마치 신문을 보는 것처럼 24시간에 한 번씩 큐레이션해준다.

 

큐레이트된 검색 결과만을 보여주는 검색엔진 Blekko [ http://blekko.com ]
Blekko는 구글이나 야후와 같은 검색엔진이다. 하지만 Blekko는 구글, 야후와는 달리 그렇게 많은 검색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사용자가 검색한 검색 결과를 평가하여 비중이 있는 것들만 선정하여 보여준다.

 

마치며

 ‘쿠플존’이라는 학생 커뮤니티 웹 사이트가 있다. 쿠플존은 해마다 2월이 되면 입학 예정인 새내기들의 질문 글이 넘쳐난다. 처음에는 선배들이 새내기가 반가워서 친절히 답해주지만 같은 질문이 반복될수록 선배들의 반응도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한 사용자가 새내기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필요해하는 글들만 모아서 공지사항에 올려놓았다. 새내기는 그 글로 인해서 질문 글을 올리거나 검색할 필요 없이 간단히 클릭 하나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선배들 역시 대부분의 질문에 답이 되는 글 하나만 알려주면 되게 되었다. 큐레이션이란 그런 것이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큐레이트해서 인터넷 어디엔가 올려둬 보시라. 전공에 대한 지식이든 취미에 대한 지식이든 그도 아니면 게임 아이템 획득 방법에 대한 지식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손종수
  경기 광주 출생. 고려대학교 경영정보학과 졸업.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컴퓨터정보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자료구조, 인공지능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커뮤니티 사이트인 쿠플존을 제작하였으며 현재는 명예운영자로 활동 중이다.


 ※ 이 글은 제가 KUSZINE에 기고하여 출판된 글입니다.